#1. 한국 시간으로 금일 새벽에 애플의 키노트가 있었죠. 결과적으로 아이튠스 9과 아이팟 나노의 카메라 장착 등이 크게 이슈화 된 것 같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다들 이미 뉴스를 통해 접하셨을 것 같고, 본 메인 행사에 숨겨진 서구 사회의 문화에 대해 다소 충격을 받은 부분이 있어서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2. 왕의 귀환
아무래도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은 스티브 잡스의 귀환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이미 애플의 경영지배권에 있어서 잡스의 비중은 애플 히스토리 그 어느때보다도 강한 시점인데요, 오늘 키노트에서 가장 충격적인 그가 내뱉은 단어는 바로 다른 것이 아니라 'Generous'였습니다. 키노트를 보시면 아실텐데요. 잡스가 몇달간 공백기를 가진 이유는 간 이식 수술입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것은 잡스가 가진 사회 혹은 더 큰 의미에서 인류애에 대한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발표 초반에 자기 자신은 공백기를 가졌고, 그 이유가 간 이식 수술 때문이다. 이식 받은 간은 교통사고를 당한 20대의 간이라고 하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기 위해선 이런 Liver donator의 generous한 마음이 아니냐하고 애플 키노트 제품 발표회의 성격을 가진 발표 서두에 이런 뚱딴지 같은 말을 합니다. 본인은 그런 기부자의 따뜻함으로 인해 혜택을 받았고, 그러한 혜택을 다시 사회에 반환을 하자..라는 말이였는데요. 솔직히 애플 키노트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제품 몇달러니깐 제발 사라 이런 아주 노골적인 상업적 구걸인데, 이런 무대에서 한 개인이 사회에서 가져야할 특별한 포지션에 대해 길게 언급하고, 그런 명연설을 자신의 제품 관련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청중에게 말을하고 청중도 큰박수로 긍정적인 제스쳐를 표한 것을 보면, 서구 사회는 아무래도 긍정적인 개인주의를 가진 사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을 보니 더 야위였지만 건강이 회복하길 바랍니다.

#3. 문화의 힘
애플 키노트를 보면 항상 느끼는 바지만, 애플은 문화적 컨텐츠를 아주 잘 활용하는 기업인 것 같습니다. 발표 초반부터 마지막 노라 존스의 공연까지,,, 언급된 밴드만 10밴드가 넘습니다. 한 사기업이 본인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패키지를 장사하면서 이렇게 많은 문화적 컨텐츠를 간판에 내걸고 추가적으로 판다는 행위가 삐딱한 시선으로보면 정말 웃기는 일인데, 애플의 상상력과 하드웨어의 결합으로 인해 빛을 발합니다. 일단, 이런 행위는 국내 기업에서 찾을 수 없는 행태일 뿐만 아니라 일단 언급하는 것 자체가 발표연사가 그 컨텐츠를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구요, 티맥스 박대연처럼 20몇년간 영화를 안보게 일했다는 정말 얼토당토 않음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그들의 인생 즐기기인 것 같습니다. 결국 고차원의 상상력은 문화적 감각 및 다른 감수성 등등에서 나오는 것일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적 토양에서 그런 분위기를 내는 것은 정말 힘들죠..

#4. 노라존스 신곡
후반부에 노라존스가 나왔는데 조금 살찐 것 같구요..신곡 한곡을 불렀는데 괜찮습니다. 아리랑이나 틀어대던 국내 모기업이랑은 정말 많이 비교되는 대목인데 일단 사업주가 가장 컨템포러리한 아티스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고, 클라이언트에게 그것을 소개시켜준다는 거 자체가 키노트의 엔터테이너적 측면을 극대화 한 것으로 볼수 있겠네요.

#5. standard english
키노트를 보는 내내 자막없이도 발음을 알아 들었습니다. 제가 리스닝을 잘해서가 아니라 표준 미영어를 다들 구사한 것 같았구요. 게임 벤더 사장 한분의 발음은 다소 독일쪽 같았지만,,,,, 이해하기에 그렇게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표준 영어를 통해 다른 민족에게 익숙함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이것도 국내 모기업처럼 사투리 팍팍 쓰는 행태와는 좀....;;;; 뭐 사투리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6. 총평
애플은 역시 애플답다입니다.

2009/09/10 20:05 2009/09/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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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님 정은임

from etc 2009/08/06 01:01


벌써 5년....

2009/08/06 01:01 2009/08/06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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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루종일 시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과연 토종 OS의 모습은 어떨까? 벤쳐 1천억 클럽이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는 어떠할까? 성능은? 호환성은? 등등 갖가지 추측을 등에 업고 베일에 가려있던 그 위대한 위용이 나오는 날이였던 것 같습니다.

#2. 일단 행사 초반에 강만수 전장관이였나요? 나와주셨죠...소프트웨어 업계에 그 분이 과연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 색이 아주 강하신 분이 산업계 제품 출시 설명회에 왜 나왔는지는 정말 모르겠구요. 그분을 누가 불렀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극히 생뚱맞은 상상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애플 키노트 발표전에 엘고어 나와서 격려사나 축사한 적 봤나요? 솔직히 일개 기업의 제품 출시에 높으신 분들이 나와서 축사한다고 해서 소비자가 윈도 살 것도 아니구요. 상상력의 부족인 것 같습니다. 아...높으신분 나왔구나 제품 대단해 보인다라는 뭐 그런?

#3. 본론으로 들어가니 박대연 사장님의 연사가 이어졌는데 솔직히 한국의 피티에 대해 크게 기대는 안했구요. 그분도 엔지니어셨고 교수이셨기때문에 일면 뭐 그렇다라고 넘어갔습니다. 애플의 키노트가 왜 그렇게 커보이는지 세삼스레....그리고 한국의 기획팀이라는 데서 하는일이라는 것도 솔직히 조금 의문이 많이 갑니다.

#4. 뭐 축사니 격려사니 그렇다 치고,,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하는데요. 100억원의 사나이 어쩌구 운운하면서 박대연 사장이 소개시켜준 이번 프로젝트 과책 정도로 보이시는 분(솔직히 소프트웨어 업계에 있지만 이 바닥 인맥 좁은거는 알겠는데 잘 모릅니다.)이 나와서 티맥스 윈도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개발자가 가져야했던 어떤 비애를 털어 놓으시는데 거의 나운규의 아리랑 시대의 신파극을 보는듯한 구구절절한 개발자들의 사연이 봇물터지듯이 나왔죠...1.아이를 낳았는데 프로젝트 때문에 못된 남편됬다. 2.이혼 요구도 받아서 위기에 처했다(이혼했다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잘..) 3.개발자 한분이 쓰러져서 퇴원후에 복귀해서 정상적인줄 알았는데 다시 쓰러지더라 4.애인이랑 해어지는 사례가 많다 뭐 이런 지극히 어이없는 그분이 백억원의 가치를 하시는 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따구의 망발을 어찌 입에 담는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가구요. 티맥스가 월화수목금금금인거는 알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착취구조를 과책 입에서 까발리고 이만큼 노력했으니 인정해달라 하는 모습이 참으로 측은해보였고, 어찌보면 하나의 간증 집회 내지는 피라미드 업체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좀 말조심하는게 나을 것 같구요, 개발자들이야 CTO까지 안올라가는 이상 거의 주어진 일에 대해 개발하고 프로세스 개선하는 작업이 태반인데 개인 혹은 소수의 정책 결정에 의해 일하시는 많은 수고하시는 개발자들에게는 정말 좆같은 멘트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5. 신파극이 끝나고 나서, 실질적으로 윈도우 시연이 있었습니다. 티맥스 오피스, 브라우저, 스타크래프트의 시연 등등 갖가지 이제껏 개발한 결과물들을 시연했는데요. 마찬가지로 피티의 중요성이 새삼스레 부각이 되더군요. 의문시되는 기술적인 의아함은 스크린 샷들로 대체하겠습니다. 솔직히 이해가 안가는 면이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바이너리 배포를 다른 운영체제에서 하는 경우 저작권 문제가 걸려있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네요.

#6.브라우저의 액티브 엑스 설치창은 윈도우랑 같네요.

#7.

관련 동영상은 그냥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8. 돌아다니고 있는 짤방에 오늘 실시간 화면에 캡쳐된 스카우터에 돌아간 네이버에 날짜가 오늘날짜가 아니고, 7월 5일에 윈도우 타이틀 창에는 MS Explorer텍스트가 돌아다니는 짤방이 있네요. 이건 검사해봐야할 일이구요. 스카우터에서 구글 접속할때 화면에 줄그어진 시연은 정말 압권이였고, 스타크래프트는 되지도 않고 답답한 로딩 시연을 굳이 왜 해야하는지 정말 의문입니다.

#9. 뭐 어찌됬건 제2의 황우석이던 아니던 아쉬운 점은 여전히 한국사회는 상상력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라는 생각밖에 안드는 조금 많이 우울한 날이였네요. 그래도 천억 클럽의 기업인데 발표 수준이나 시연의 수준이 대학교 텀프로젝트만 못한걸 보니 조금 답답하구요. 제발 정치적인 논리로 관공서에는 안깔렸으면 합니다.

#10. 끝판에 부대행사로 mc나와서 아리랑 비슷한거 나왔을때는 정말 압권입니다...;;;;;;;;;;;윤하씨 공연은 좋은데 야리꾸리한 아리랑 비슷한 건 뭔지..이해가;;;;;;;;;;;

#11. 개발자 분들은 수고하셨구요. 뭔 죄가 있겠습니까........한국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해외에서 욕쳐먹지 않게 좋게 방향이 흘러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2. 아참, 그리고 티맥스는 큐로컴과 지재권 분쟁 항소에서 패소한 것 같은데 뭔가 급박하게 돌아가나요?;;;;;;;;;요새 많은 일들이 티맥스에서 일어나서;;
2009/07/07 23:36 2009/07/0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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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ㅁㄴㅇ 2009/07/08 10:3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위 내용대로라면 pt를 위한 충분조건을 갖추지 않을 상태에서 감행한거 같군요
    시제품까지는 아니더라도 어플리케이션(윈도 프로그램)들이 제대로 작동 시연하는거라도 보여줘야하는데
    이건 사내 시연회를 비싼돈을 써서 감행한 꼴이로군요...
    탈ms가 아닌 고대로 종속되어 있는 모양세가 익스플로러 아이콘에도 보여지듯이 아직은 아닌거 같아보입니다
    물론 그 속사정은 저로서는 모르는법이니...

    • 그남자 2009/07/08 11:58  address  modify / delete

      아직 알파 버전 수준인거 같구요. 과욕의 기획으로 개발자만 욕먹는 상황인거 같습니다. 정식 출시 되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거 같구요..

  2. .... 2009/07/08 11:4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림 출처를 밝히시는게 어떨지요...
    방금 다른 블로그에서 본 똑같은 그림이 있길래 확인해봤더니
    그쪽 블로그에 있는 그림 링크해서 쓰셨네요.

    • 그남자 2009/07/08 11:57  address  modify / delete

      이글루스는 이미지 주소로 블로그 출처 얻기가 힘들어서 해당 이미지를 삭제했습니다.

닷컴시대 주름잡은 10인의 사나이 2007-11-02

Focus in & out
새롬 신드롬에서 안철수 신화까지…“게이트 딛고 진정한 벤처 등용문으로 변신”
1,000사 시대 맞은 코스닥 11년


과거 코스닥은 ‘주가 조작의 온상’이라는 어두운 면과 ‘스타 CEO의 산실’이라는 명성을 동시에 지닌 야누스 같은 존재였다. 상장기업 1,000사 시대를 맞은 코스닥 시장이 배출한 ‘기린아’와 ‘미꾸라지’들을 짚어봤다.
올해로 11년째.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이 1,000개를 돌파했다. 벤처의 산실이라는 평가와 작전세력이 판치는 시장이라는 비난 속에서 부침을 거듭하면서, 2001년 이후 처음으로 벤처기업에 투입된 투자금액이 1조 원을 넘어섰다.

코 스닥 시장의 활황 여부에 따라 말 그대로 벤처로 시작한 기업들이 황제의 자리에서 게이트의 온상이 되기까지 영광과 굴욕을 함께 경험했다. 휴맥스·NHN·다음 등 성공적 기업 운영으로 투자자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 기업도 있지만, 새롬기술·골드뱅크·한국디지탈라인 등 실망을 안긴 기업도 많았다.

2000년 3월10일 코스닥 주가지수가 2,834.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그 해 말 650대로 떨어지는 급락 장세 속에서 주식을 담보로 은행 등에서 자금을 끌어들인 벤처기업들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은행 등 금융회사까지 덩달아 위기에 처했다.

벤처의 스타들 역시 코스닥 시장과 영욕을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1년, 과연 누가 뜨고 누가 추락했는가?

1 오상수 (전 새롬기술 사장)
- 한 주 300만 원의 추억 남기고 코스닥에서 사라졌다


오상수 사장
오상수 당시 새롬기술 사장은 “진보적 네트워크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그는 전화·모뎀·PC를 이용해 세상을 한데 묶고 싶어했다.

우 선 새롬기술 오상수 사장. 그는 한때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기린아였다. 1993년 7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석사 출신 동기생 4명과 의기투합해 각자의 주머니를 털어 자본금 1억 원으로 설립한 새롬기술이 창업 3년 만에 25배의 기록적 매출 성장을 올리며 단숨에 업계의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첫 작품인 ‘새롬 팩스맨’은 한때 200만 카피 이상 팔려나가며 팩스 전송 SW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1997년 PC통신을 통해 무료로 공개한 통신 에뮬레이터 ‘새롬 데이타맨프로’는 격찬을 받으며 새롬을 일약 ‘한국의 마이크로소프트’로 격상시켰다.

당시 오 사장은 “진보적 네트워크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그는 전화·모뎀·PC를 이용해 세상을 한데 묶고 싶어했다. 사람들이 마우스만으로 어디나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야침 찬 포부였다.

또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잘나가는 벤처기업 사장이어서 돈 좀 벌었겠다는 소리를 듣지만 아직 내집마련의 꿈을 못 이룬 보통 젊은이”라며 소탈한 면모를 보이고는 했다.

하 지만 1999년 8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면서 오 사장과 새롬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롬의 주가는 1999년 10월까지 4,500원에 불과했으나 12월 초에는 23만 원까지 올랐다. 불과 50여 일 만에 무려 4,900%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새롬기술의 미국 자회사인 다이얼패드에서 인터넷 무료 전화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 주가 급등의 재료였다. 새롬기술의 주가는 2000년 2월에는 30만8,000원까지 올라 코스닥 등록 6개월 만에 7만1,861%라는 경이적 상승률을 기록했다.

다이얼패드로 코스닥의 대표기업 자리에 등극한 새롬기술의 주가는 한때 300만 원까지 뛰어올라 삼성전자가 우스울 지경이었고, 오 사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 다음 가는 재산가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 러나 그는 분식회계, 지분율 허위 공시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기에 이른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비리가 몰락의 원인이었다. 그 뒤로도 경영권 분쟁과 기업 위기에 대한 책임 문제로 현직으로 복귀했다 다시 물러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2 김진호 (전 골드뱅크 사장)
-타고난 주식의 귀재,


김진호 사장
김진호 사장이 창업한 골드뱅크는 ‘인터넷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투자자의 시선을 끌면서 코스닥 시장의 스타로 등장했다.

주가 조작설 도마에 오르며 표류하다 퇴장

골드뱅크를 창업한 김진호. 그는 ‘인터넷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투자자의 시선을 끌면서 코스닥 시장의 스타로 등장했다.

장외에서 시작된 그의 주식 세일즈는 장내에 진입한 뒤에도 계속됐다. 코스닥 등록 후 이 회사의 주가는 장밋빛 전망 속에서 잘나가기 시작했다.

코스닥에 등록된 이후 김씨는 주식 세일즈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기업사냥에 나섰다. 신용금고·농구단 등 굵직굵직한 사업을 벌이며 사세를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해 나갔다.

1999 년 1월 초 주당 935원이었던 주가는 5월 말 3만1,200원으로 5개월 만에 3,230%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영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국회에서 정치자금 연루 사실이 터져 나오고, 주가 조작설의 도마에 오르며 결국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당 시 김씨는 1999년 4월 골드뱅크 대주주인 전 중앙종금 회장 김석기 씨와 공모해 골드뱅크가 해외 전환사채를 발행해 외자를 유치한 것처럼 가장하는 수법으로 주가를 조작해 660억 원대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러는 사이 골드뱅크도 2년여 동안 제대로 실적을 내지 못한 채 표류하면서 사업은 점차 위기를 맞게 됐다. 김진호 사장은 이 상황조차 ‘기발한’ 방법으로 타개했다. 때마침 골드뱅크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가 나타나자 그는 얼마간 분쟁을 벌이는 듯하더니 돌연 경영권을 내놓고 일본으로 출국했다.

2년의 세월이 지난 2002년 그는 조용히 귀국했다. 얼마 후 검찰은 28억 원 상당의 골드뱅크 공금을 횡령하거나 배임한 혐의로 그를 구속 수감했다.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김씨는 2002년 다시 증권가에 등장했다. 그는 ADSL 모뎀 기업 비젼텔레콤의 주식을 예약매매 방식으로 사들이며 증권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많은 사람이 색안경을 끼고 그를 바라봤지만, 증권가에서 김씨는 여전히 ‘스타’였다. 비젼텔레콤 주식은 김씨의 인수 사실이 알려지면서 급등세를 탔다.

김 씨는 주가가 상승하자 골드뱅크 시절 활용하던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유상증자와 M&A가 다시 등장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장외기업보다 코스닥 기업 인수에 주력했다는 점. 이후 그가 인수한 기업들은 골드뱅크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유상증자가 잇따랐고 타법인 출자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기대와 달리 이들 회사의 주가는 증자가 시작된 후 급격히 하락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김진호 씨는 이 회사들에서 곧 손을 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3 최유신 (전 리타워텍 회장)
-‘e-deal의 예술가’ 평가로 각광…


최유신 회장
투자자들이 코스닥에 진저리를 칠 때쯤 리타워텍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한 열풍을 불러일으킨 하버드대 출신 젊은이가 등장햇다.

‘선진 금융기법’ A&D 허약함 드러내

투자자들이 코스닥에 진저리를 칠 때쯤 리타워텍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한 열풍을 불러일으킨 하버드대 출신 젊은이가 등장했다. 1970년생으로, 미국 이름은 찰스 스팩맨.

최석진 한국푸르덴셜생명보험 회장의 아들인 최유신 전 리타워텍 회장은 1997년 27세의 나이로 리타워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그러고는 가스보일러용 환풍기 제조업체였던 파워텍을 인수해 대박을 냈다.

파워텍은 2000년 1월26일부터 3월16일까지 34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2000년 4월에는 주가가 150만 원을 넘어섰다. 1월만 해도 2만 원이던 주식이 석 달 만에 무려 80배가 뛴 것이었다.

파워텍을 거점으로 국내외 인터넷 벤처회사를 인수한다는 것이 리타워 그룹의 복안이었다. 파워텍은 한국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전초기지였던 셈이다.

회 사 이름을 리타워텍으로 바꾸고 회장에 오른 최유신 전 회장은 자신의 투자기법에 관해 “미국에서는 상장회사를 사들인 뒤 업종전환 등을 통해 회사 가치를 높이는 투자가 흔하다”고 설명했다. 한동안 코스닥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이른바 ‘인수후개발(A&D)’이라는 새로운 금융기법의 등장이었다.

실제로 리타워텍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최 전 회장은 미국 <포천>지가 ‘정보통신 투자(e-deal)의 예술가’로 극찬하는 등 한때 한국에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당 시 최 전 회장은 “아시아에 인터넷 제국을 건설하겠다”며 하버드 출신 후배들을 끌어들였고, 인터넷 관련 회사 인수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비즈투비즈·바트랜드·리눅스인터내셔널 등이 그가 사들인 회사였다. 공격적 인수합병(M&A)도 관심거리였지만 인수 방식도 특이했다. 인수자금은 대부분 전환사채를 발행해 조달했다.

허울 좋은 ‘선진 금융기법’ A&D

또 인수한 회사의 대주주에게는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로 파워텍의 주식 일부를 넘겨주는 한국식 주식 교환 방식을 활용했다. 하지만 ‘선진 금융기법’이라던 그의 재주 넘기도 오래 되지 않아 실체를 드러냈다.

리 타워텍은 2000년 매출액 2억 원에 당기순손실이 무려 1조5,150억 원이나 됐다. 매출액의 7,000배 이상에 달하는 적자를 낸 것이었다. 자회사들도 제대로 이익을 내는 곳이 거의 없었다. 무려 1조4,000억 원을 쏟아 부어 인수한 아시아넷 역시 적자투성이였다.

국세청은 2003년 1월 리타워텍에 453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 리타워텍은 감사의견 거절로 코스닥에서 퇴출됐다. 퇴출 직전 리타워텍의 주가는 20원까지 떨어졌다.


4 정현준 (전 한국디지탈라인 회장)
-잊을 만하면 터지는 ‘코스닥 게이트’…‘한국판 손정의’도 침몰


정현준 회장
이때부터 사채시장에서는 “정현준은 끝났다”는 말이 나돌았다. 얼마 뒤 그는 주가 시세 조종 혐의로 금감원의 조사를 받았고, 이어 서울지검에서 그를 수사하기 시작했다.

비 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건으로 또 한 번 코스닥 시장 참가자들을 절망에 빠뜨린 인물이 정현준 전 한국디지탈라인 회장이다. 정 전 회장은 동방금고의 거액 불법 대출과 회사의 부도로 몰락하기 전까지 기업 인수합병(M&A)의 귀재로 불렸다.

대 학 졸업 후 선배에게 빌린 돈 3,000만 원으로 M&A 시장에 뛰어든 그는 벤처 열풍과 코스닥 시장 활황에 힘입어 3년 만에 수백 억 원대의 재산을 일궈냈다.M&A에서 거둔 막대한 차익을 바탕으로 금융기관까지 인수한 정씨는 한국디지탈라인 회장에 취임해 ‘한국의 소프트뱅크’를 표방하며 인터넷 재벌을 꿈꿨다.

하지만 정현준은 온갖 무리수와 불법 끝에 결국 참담하게 몰락했다. 젊은 벤처기업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적 사업 행태가 낳은 실패였다.

그 는 2000년 한국디지탈라인의 전신인 웹인터내셔날의 윤석민 사장으로부터 회사 지분 30.89%를 싼 값에 인수했다. 이후 전환사채(CB) 30억 원을 발행해 KDL창업투자 등 각종 인터넷 및 정보통신 벤처기업을 인수하며 업계에 급속히 두각을 드러냈다. 액면가 500원인 디지탈라인 주가는 4만6,000원까지 치솟아 떼돈을 벌었다.

같은 해 6월에는 새한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새한이 갖고 있던 디지탈임팩트 지분 13%를 인수해 ‘한국판 손정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렇게 벤처 투자로 돈을 번 정씨는 대신신용금고와 동방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금융업에 진출했다.

그 러나 정씨는 진정한 금융인이 아니었다. 법규상 상호신용금고는 출자자 대출이 금지돼 있으나 105억 원을 불법으로 대출받았다. 동방금고는 또 직원들과 투자조합이 갖고 있는 평창정보통신 주식 20만4,689주를 시세보다 3배가량 비싼 1만1,000원에 매입하는 형식으로 회사 자금 15억 원을 빼돌렸다.

정씨는 이와 함께 대신금고 소유의 평창정보통신 주식 33만 주를 무단 인출했다. 회사 재산과 개인 재산을 구분하지 못한 행위였다

그 가 불법의 유혹에 빠져든 이유는 증시 붕괴와 무리한 사업 확장 때문이었다. 정씨는 이미 대규모 지분을 가지고 있던 평창정보통신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주식 50만 주를 주당 1만5,000원에 공개 매수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장외주가는 9,000원 대로 쉬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정씨는 소액주주로부터 50만 주를 일단 인수했으나 자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대금 지급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두 번에 걸쳐 50%씩 매입대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나 1차 시한을 지키지 못했고, 대신 이 주식을 담보로 사채시장에서 급전을 끌어다 썼다.

이때부터 사채시장에서는 “정현준은 끝났다”는 말이 나돌았다.얼마 뒤 그는 KDL의 주가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금감원 조사를 받았고, 이어 서울지검에서 그를 수사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정현준게이트’가 터져 나왔고, ‘한국의 손정의’를 꿈꾸던 정현준은 결국 불법 사업가로 전락했다.


5 장흥순 (전 터보테크 회장)
-‘진정한 벤처 1세대’ 선두로 나섰다 분식회계 등 파문에 추락


장흥순 회장
주주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탄탄한 기술력과 내실 있는 사업 내용을 믿은 소액주주들은 구명운동을 벌이며 장 회장을 지원했다.

게이트의 시대가 저물면서 한동안 코스닥은 정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2005년 벤처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던 장흥순 터보테크 회장이 분식회계 혐의로 사법처리되면서 코스닥은 또 한번 큰 충격에 휩싸였다.

장 흥순 터보테크 회장은 변대규 휴맥스 사장,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의장 등과 함께 ‘진정한 벤처 1세대’의 선두주자였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과 박사과정 시절이던 1988년 공장자동화(CNC) 기술을 응용한 제품과 정보통신 단말기 등을 생산하는 터보테크를 설립해 연매출 1,000억 원에 육박하는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창업 당시 무작정 은행 지점을 찾아가 “카이스트 박사 만드는 데 초등학교부터 투자액을 따지면 1억5,000만 원이 든다. 우리 회사 박사 2명을 담보로 3억 원만 빌려달라”며 지점장을 설득해 대출받은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1995년 벤처기업협회 창립 당시 부회장을 맡았고, 2000년에는 회장직을 맡았다. 10년간 벤처기업가들의 ‘맏형’ 노릇을 했던 셈이다.

또 코스닥위원회 위원, 코스닥등록법인협의회 부회장, 감사원 아이티(IT) 감사 자문위원,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등으로 대외활동에도 열정적이었고, 1998년에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차세대 지도자 100인에 선정되는 등 개인적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2003년부터는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혀 투자를 대폭 늘리면서 적자가 심화됐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결국 분식회계에까지 손을 댔다. 장 회장은 2005년 9월 CD를 이용해 700억 원대의 분식회계로 회사의 적자 규모를 줄인 사실이 드러나 결국 구속됐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인물들과는 달랐다. 우선 주주들이 그를 버리지 않았다. 탄탄한 기술력과 내실 있는 사업 내용을 믿은 소액주주들은 구명운동을 벌이며 장 회장을 지원했다. 각계 인사들도 투자 형식으로 터보테크에 자금을 투입하며 그를 도왔다. 백종진 당시 한글과컴퓨터 사장, 이강환 대한생명 전 고문, 신선호 전 센트럴그룹 회장, 신승남 전 검찰총장 등이 그의 우군이었다.

그는 지난 6월 경유차 매연 저감 장치를 발표하며 재기에 나섰다. 하지만 그는 “재기라기보다 터보테크를 도와주는 역할 정도로 봐 달라”며 전면에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


6 이찬진 (전 한글과컴퓨터 사장)
-‘아래아한글1.0’ 상용화로 급성장…‘한국판 빌 게이츠’의 몰락 아쉬워


이찬진 사장

기술력과 열정을 갖추고도 꽃을 피워 보지 못한 채 아쉽게 뒤안길로 사라진 벤처 스타는 또 있다. ‘한국의 빌게이츠’라고 불렸던 이찬진 전 한글과컴퓨터 사장.

1989년 서울대 후배 3명이 공동 개발한 ‘아래아한글1.0’의 상용화에 성공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한글과컴퓨터는 1993년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최초로 매출액 100억 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전 사장은 1996년 탤런트 김희애 씨와의 결혼에 이어 1997년에는 당시 신한국당 직능대표로 국회의원이 됨으로써 사업 외적 측면에서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CEO’로 부상한다.

그러나 이 전 사장이 이처럼 사업 외적 측면에서 주목받는 사이 그가 설립한 한글과컴퓨터사는 당시 만연했던 불법 복제와 도스에서 윈도로의 컴퓨터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이 전 사장과 한글과컴퓨터의 가장 큰 실패 원인은 당시 난무하던 불법 복제. 그러나 불법 복제가 한글과컴퓨터와 이 전 사장의 실패를 모두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불법 복제의 피해가 크기는 하지만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도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

불법복제 관행에 무너져

이 에 대해 당시 소프트웨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법 복제는 어차피 막기도 힘들지만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는 구실도 한다”며 “아래아 한글 역시 개인 사용자의 불법 복제 방지보다 기업시장을 적극 개척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한글과컴퓨터가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도 문제였다. 이 전 사장은 위기가 닥치자 한컴네트·한컴서비스 등 사업다각화를 위한 별도 법인을 세우며 본업보다 인터넷 사업과 교육사업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다. 주력 분야를 도외시한 사업다각화는 결국 주력분야에서의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을 더디게 만들었고 한글과컴퓨터의 몰락을 앞당겼다

이찬진 사장은 이후 드림위즈를 설립해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지만, 과거의 영광과는 너무 멀어져 버린 듯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드림위즈는 지난해 코스닥 상장을 시도했으나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7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
- 게이트 시대 아닌 기술기업 시대 연 주인공… 최근 성장세 주춤


이재웅 사장
다음은 1995년 2월 자본금 5,000만 원, 이재웅 사장을 포함한 직원 3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료 웹메일인 ‘한메일’서비스를 시작한다.

장 흥순 사장과 이찬진 사장의 쇠락은 코스닥이 진정한 벤처기업들의 요람으로 거듭나는 전환점이었다. 그 뒤 코스닥에서는 허황된 돈놀이가 대부분 자취를 감췄고,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새로운 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대표적 예가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의 부상이었다.

‘네티즌’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인터넷 사용자들이 대부분 인터넷이라는 것을 처음 맛보게 된 것이 ‘한메일’이라는 이메일 서비스를 통해서였다.

이재웅 사장이 26세의 나이에 인터넷을 사업에 접목하겠다며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하고 1997년 한메일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인터넷이 실생활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은 1995년 2월 자본금 5,000만 원에 이재웅 사장을 포함한 직원 3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료로 웹메일을 쓸 수 있는 ‘한메일’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과거 PC통신 중심이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인터넷으로 급속히 이전하기 시작했다.

다음이 코스닥에 등장한 것은 1999년 말이었다. 당시 공모가는 ‘겨우’ 1만 원. 태생부터 거품이 잔뜩 끼었던 무늬만 벤처와는 출발부터 달랐던 것이다.

2000 년 3월 이재웅 사장은 온라인 쇼핑몰(디앤샵)을 오픈하면서 인터넷 포털에서 시작한 사업 영역을 쇼핑 분야로까지 넓힌다. 그 해 7월에는 다음금융플라자를 오픈하면서 증권·보험 서비스와 함께 부동산 등 모든 재테크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e메일 서비스로 시작해 쇼핑과 함께 재테크 정보까지 제공하는 종합 전자 상거래 영역으로 사업을 늘린 것이다.

2003 년에는 각 언론사의 뉴스와 함께 다음이 독자적으로 뉴스를 생산해 네티즌에게 제공하는 ‘미디어 다음’을 처음으로 오픈했다. 이로 인해 이재웅 사장은 인터넷 사업에 이어 언론시장에도 직접 뛰어드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은 이메일에서 카페, 검색으로 급속히 바뀌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과다하게 사업 영역을 넓혀 과거만큼의 명성을 유지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웅 사장은 2006년부터 국내외 비핵심 사업 매각 등 서서히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 동안 벌여 놓았던 연예기획 사업과 온라인 음반, 온라인 여행사업에서는 이미 손을 뗐고, 다음다이렉트자동차보험도 정리 절차를 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웅 사장은 12년간 책임져온 다음의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최대주주로서의 이사회 멤버 지위만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그 는 그 동안 “빌 게이츠 회장처럼 현업에서 한 걸음 물러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지만 투자자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회사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며 경영에서 손을 떼고 싶다는 심정과 이를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의 괴리를 토로한 바 있다.

다음의 설립자로서, 국내 인터넷 사업 역사를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재웅 사장과 다음은 한국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려면 어떤 것에 도전해야 하는지, 무엇은 하면 안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8 변대규 (휴맥스 사장)
-셋톱박스 자체 브랜드 수출로 역량 축적… ‘다음 카드’로 코스닥 이끌어야


변대규 사장
변 사장은 대학 교수나 연구원의 길을 버리고 산업현장을 택했다. 연구논문만 중시하는 기존 대학의 가치관을 깨고 벤처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지도교수의 영향이 컸다.

인 터넷에 이재웅 사장이 있다면 오프라인에는 변대규 휴맥스 사장이 있다. 셋톱박스가 주력 상품인 휴맥스는 1997년 코스닥에 상장했을 때 매출액이 142억 원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40배 이상 매출 규모가 커졌다. 덕분에 휴맥스는 대기업 계열사까지 포함한 코스닥 전체 기업 1,000개 중 가장 규모가 큰 기업 중 하나다.

변 사장은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박사 과정에 다니던 1989년 서울 봉천동 낙성대 뒤편의 작은 사무실에서 건인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창업했다.

1996 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럽 규격 디지털 위성 셋톱박스를 개발했고 수출에 나섰다. 외국에서 100~200대의 소량 주문도 받고, ‘휴맥스’라는 자체 브랜드로 시장을 개척하는 등 기존 기업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셋톱박스 시장에 접근했다.

변 사장에게는 항상 ‘젊다’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우선 세계경제포럼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 선정(2002), 한국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 수상(2002) 및 최연소 정회원 가입(2005) 등 차세대 주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그가 창업 전선에 나선 지 벌써 20년이 다 돼간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제 그에게서 ‘젊음’ ‘차세대’라는 꼬리표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변 사장은 대학 교수나 연구원의 길을 버리고 산업현장을 택했다. 연구논문만 중시하는 기존 대학의 가치관을 깨고 실제 사업화에 도전하는 벤처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지도교수의 영향이 컸다.

창 업 초기에는 학생들로만 구성돼 우여곡절도 많았다. 당시 자본금 마련을 위해 기술신용보증기금에 5,000만 원짜리 보증서를 신청하러 갔다가 집 등기부등본을 가져오라는 말에 “저는 하숙생인데요”라고 답해 창구 직원을 당황하게 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휴맥스는 수많은 굴곡을 겪었지만 다행히 18년이 지난 지금 국내 IT 벤처 신화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 당시 친구들과 5년 후 매출 100억 원, 10년 후 매출 1,000억 원을 목표로 삼았는데 두 가지 모두 달성하는 데 딱 1년씩만 늦었으니 성공한 셈이죠.”

‘벤처’ 넘어 중견기업 진입

이 처럼 휴맥스는 차세대가 아닌 현재의 대한민국 이공계를 이끌어 가는 ‘주류’로 들어왔다. 그도 인정하듯 휴맥스는 이미 벤처기업의 단계를 넘어 중견기업으로 진입했다. 18년 역사에 연 매출 6,500억 원, 6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회사를 언제까지 벤처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대한민국 이공계는 변 사장을 벤처 신화의 주인공에서 놓아주지 않는다. 수많은 벤처 1세대 경영인이 무대에서 사라진 지금 그가 지닌 의미는 성공한 경영자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이공계는 그가 ‘제2의 휴맥스’를 이끌어 내는 지향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렇다면 10년 뒤 휴맥스의 모습은 어떨까? 변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중견기업으로 진입했으니 삼성·LG전자처럼 전 세계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최소한 ‘새끼 대기업’ 정도는 돼야죠.”


9 안철수 (전 안철수연구소 사장)
- 코스닥 늦깎이로 스타덤…정도경영의 진수 보였다는 평


안철수 사장
남들은 회사 설립신고서의 도장이 채 마르기도 전에 코스닥으로 달려갔지만, 안철수 사장은 서두르지 않았다. 1997년 미국 맥아피사의 1,00만 달러 인수 제의도 한마디로 거절한 그였다.

코스닥에서 슈퍼스타들이 잇달아 등장하는 동안 먼 발치에서 이를 바라만 보고 있던 이가 있었다. 코스닥은커녕 벤처기업이라는 말도 생겨나기 전에 이미 온 국민이 다 아는 기업인이 돼 있던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당시 사장이었다.

안 전 사장은 1995년 자신이 개발한 백신 프로그램 ‘V3’를 바탕으로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한 후 오로지 백신 프로그램 개발에만 매달려 안철수연구소를 오늘날 국내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일궈냈다.

특히 안 전 사장은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로 안철수연구소의 연매출이 1억여 원에 불과할 때도 ‘V3’를 1,000만 달러에 팔라는 외국계 자본의 제의를 거절해 화제를 모았다.

또 벤처 거품으로 ‘컴’자만 붙어도 수십억 원이 쏟아지던 2000년에도 거품 투자를 받지 않겠다며 코스닥 입성을 마다하며 내실 다지기에 힘썼다.

그 결과 안철수연구소는 지난해 매출 315억 원, 영업이익 102억 원에 부채비율 19%에 불과한 소프트웨어 업계 최고의 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우직하게 ‘정도 경영’을 강조하면서 ‘한 우물’만 판 결과다.

10년 전 누군가가 안철수 사장에게 회사 설립을 권했다.

“저는 사람 만나는 것보다 혼자 책 읽고 글 쓰고 프로그래밍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회사를 만들어도 제가 좋아하는 일만 계속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곧 돌아왔다.

“당연하죠. 사장 위에는 아무도 없잖습니까? 당연히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습니다.”

안 사장은 그 한마디에 힘을 얻어 회사를 세웠다. 하지만 진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장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별난 의사 안철수’는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것이 1995년 3월15일의 일이었다.

그는 스스로 말한 대로 대학교수에나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심리나 행위에 더 관심이 있었다.

2001 년 9월 안철수 전 사장은 늦깎이로 코스닥에 데뷔했다. 남들은 회사 설립신고서의 도장이 채 마르기도 전에 코스닥으로 달려갔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1997년 미국 맥아피사로부터의 1,000만 달러 인수 제의도 한마디로 거절한 그였다.

괴짜 의사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2005년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회사 설립 10주년 기념식 자리에서 안철수연구소의 사장직을 내던지고 미국 유학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졸지에 ‘안철수 없는 안철수연구소’가 된 회사는 그의 사퇴 소식에 주가가 폭락하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외국에는 창업자의 성을 딴 기업은 많지만 경영은 창업자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맡는다”며 가족이 사는 미국으로 떠났다.


10 이해진 (NHN 최고전략책임자)
- 삼성SDS 사내 벤처 1호 소사장으로 시작해 ‘네이버 신화’ 이뤄


이해진 최고전략책임자
네이버의 초기는 가시밭길이었다. 웹 사이트를 열기는 했지만 돈을 벌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 1, 2위를 다투는 NHN은 이해진 최고전략책임자가 1999년 창업한 네이버컴이 전신이다. NHN의 또 다른 한 축인 한게임 커뮤니케이션은 김범수 전 대표가 1998년 PC방에서 창업한 인터넷 게임업체다.

두 회사는 2000년 7월 합병하면서 검색과 게임을 조합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NHN은 벤처 거품이 꺼지고 난 뒤인 2002년 10월 코스닥 시장에 등록했기 때문에 벤처 광풍의 후유증을 피했다.

서른 살의 열혈 청년 이해진 연구원이 네이버를 처음 창업한 시기는 1997년 11월. 불과 10년도 안 됐다. 당시 IMF 쇼크로 한국이 휘청거리던 때였다.

서 울대 컴퓨터공학과, KAIST 전산학 석사를 거쳐 삼성SDS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이해진 과장은 회사에서 검색엔진 부문을 떼어내 별도 회사를 세우자고 경영진을 설득했다. 설득은 성공했고, 이 과장은 삼성SDS 사내 벤처 1호 소사장이라는 직책으로 6명의 창업 동지와 함께 네이버를 설립했다.

모든 기업이 그렇듯 네이버의 초기는 가시밭길이었다. 웹 사이트를 열기는 했지만 돈을 벌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 1999년에는 삼성SDS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와 대기업의 보호막도 사라졌다.

이해진 책임자는 “당시 광고영업도 안 되고 해서 인터넷 광고를 많이 게재하던 모 일간지 웹사이트의 광고 담당자를 만났더니, 이 담당자가 난처한 표정으로 (네이버는) 비전이 없다며 사업을 접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10 년 전에는 100만 원짜리 광고를 아쉬워했지만 오늘날의 네이버는 화려하기만 하다.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최근 7조 원을 돌파해 웬만한 재벌 기업을 뛰어넘었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당연히 1등이다. 또 하루에 네이버 사이트를 찾는 고객은 평균 1,600만 명, 해외 법인까지 합치면 2,500만 명에 이른다.


김완진 객원기자
월간중앙
2007-11-02 오전 9:46:00


출처: http://www.jgolfi.com/news/news_view.asp?news_type=23&ns1=148&pgae=3&mode=2&txt_search=
2009/06/07 14:55 2009/06/0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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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도 맥빠(?) 이찬진님의 트위팅이 국내 아이폰 출시에 대한 루머의 근원지로 자주 언급이 되곤 했었죠. 현재 이찬진씨는 트위터에서 애플 어플리케이션 개발자의 네트워크, 애플 아이폰 관련 최신 소식, 국내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소식 등, 주로 애플 관련 이벤트들을 트위팅 하고 계시기 때문에 트위터를 하는 대부분의 개발자 내지는 맥 유저가 그를 follow하는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팬덤을 통해서 애플 루머의 근원지가 되어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공공의 장소에서 이찬진님의 7월 출시설이 붉어져 나왓다는 것이구요. 그 루머의 근원지는 http://macmagazine.kr/122 의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굉장히 근거가 있어보이구요..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여러가지 소스를 종합해 볼때 여러가지 정보를 얻었습니다.

첫째, WWDC에서 발표
WWDC에서 새로 아이폰을 발매하는 나라를 이야기 할때 한국을 이야기 할 것 같다고 합니다.

둘째, 아이폰 3G와 아이폰 비디오(가칭)가 동시에 출시된다
기존에 들여온 물량의 3G모델과 이번에 나오는 신제품이 한국에 동시에 출시 된답니다. 새로운 모델의 QA도 이미 끝난 상태.

셋째, 7월 14일에 출시
WWDC에 발표 하고 실제 출시는 다음달 14일 정도라는 군요.

넷째, 요금제는 미정
요금제 가지고 아직도 내부에서 옥신 각신 하는 모양입니다. 어제 트위터에서 재미있는걸 얻어 들었는데, 한 5만원 정도의 요금에 네스팟+3G데이터 무제한 요금을 내놓지 않을까 하는 전망입니다. 이래야 와이파이 안 자르고 나올것 같다 이거죠.

다섯째, 명동 프리스비의 베너
명동 프리스비에 베너가 있는데, 거기에 커밍순 이라고 써있답니다. 그게 힌트라네요.

제가 들은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진짜 나올 것 같나요??




#2. 그래서 본인은 프리스비 홈페이지에 이러한 흔적이 없나해서 사이트 내의 페이지를 뒤적거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웹 사이트의 제작 매커니즘을 보면 기존의 미리 페이지를 만들고 런칭에 준비하여 사이트 url을 오픈하는 것이 거의 정설이구요. 그래야 개발자의 쪼들리는 일정에 맞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품 소개 페이지를 가보니
http://www.frisbeekorea.com/product/product.asp?seq=1 이러한 url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래서 seq= 뒤의 정수 값을 하나하나 증가시켜보니
http://www.frisbeekorea.com/product/product.asp?seq=4 url에 당당하게 iPhone 카테고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프리스비에 백 페이지에는 이미 아이폰이 있군요!!!!!!!!!!!

이상 영양가 없는 뒷담화...
2009/06/06 13:18 2009/06/06 13:18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Premist 2009/06/06 15:0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오 프리스비가 한건 하는것 같군요!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작성일: 2009년 4월 9일 목요일

한 사안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 세상은 너무나 따분할 것입니다. 저희는 어떤 주장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하고 또 어떤 신문 기사를 보고는 틀렸다고 하면서 저마다 의견들을 표출합니다.

소 수 의견일지라도 말하게 하고, 불편하거나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의견들도 표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에는 분명 실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갈릴레오의 경우처럼 소수의 의견이 진리로 판명날 수 있으며, 또한 난제들에 대해 공개토론함으로써 보다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이론상으로는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실제로 적용하는 데는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겪고 있습니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특히 어렵습니다. 블로그, 소셜 네트워크, 동영상 공유 사이트 등을 통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인터넷 세계에서 말입니다.

구글은 평소 구글이 하고 있는 모든 것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우선되어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는 보다 많은 선택과 자유를 의미하며,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더 큰 힘을 주는 것이라는 게 저희의 믿음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표현의 자유에는 일정 부분 제한이 있을 수 있으며 또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그 경계선을 어떻게 두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법률과 문화규범이 각기 다른 100여 개 국가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하루에도 수 차례 이러한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순명료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사실상 모든 나라에서 불법인 아동 포르노에 대해서는 글로벌 차원의 금지 원칙을 적용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이슈의 경우는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이 문제를 대하는 방식도 나라마다 다릅니다. 독일에서는 나치즘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Google.de (구글 독일 도메인) 제품에는 나치 관련 콘텐츠를 제외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특수성이 있는 나라들은 나치 관련 논평이나 비판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반면에 이런 극단주의를 배격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들의 주장을 오히려 공개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믿는 국가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구글과 같은 인터넷 기업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구글의 제품들은 전세계의 사용자들이 정보와 의견을 만들고, 이를 소통하고 검색하고 공유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진 입니다.

구 글 사이트에서 특정 이슈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허용하느냐에 대해서는 구글 내부에서도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것이 건강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희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정책을 만드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구글은 인터넷 상에 무엇이 보여지고 안보여져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재자가 아니며, 결코 구글이 그런 역할을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결정은 법원과 정부가 해야할 것입니다.

저희는 구글 제품을 세 가지의 서비스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이런 선택의 문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즉, 검색, 광고, 그리고 콘텐츠를 직접 호스팅하고 있는 서비스들입니다.

검 색은 이 중에서 가장 제한이 없는 카테고리입니다. 구글은 법적인 요구 (예를 들어 저작권 침해 콘텐츠에 대한 삭제 요구)가 있을 때, 혹은 불법 신용카드나 주민등록 번호가 노출된 검색결과는 이를 인덱스에서 제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때에도 제거 사유를 가능한 한 사용자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검색 분야와는 대조적으로, 저희 비즈니스 상품인 광고에 있어서는 명확한 광고 콘텐츠 정책을 세워서 가장 엄격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가 장 어려운 카테고리는 블로거, 구글그룹스, 오르컷, 동영상 사이트와 같이 사용자의 콘텐츠를 호스팅하는 영역입니다. 구글은 이들 제품을 통해 콘텐츠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장(플랫폼)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들 사이트의 콘텐츠가 구글의 서버를 통해 제공되기에 저희는 이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저희는 사용자들이 준수해야 할 규칙을 갖고 있습니다. (내용은 블로거오르컷 참조)

이 제 문제는 이 같은 규칙을 어떻게 지키도록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희 구글은 통제자로서의 역할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사용자 여러분의 휴대폰 서비스 또는 인터넷 서비스 회사처럼 콘텐츠나 이메일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기술은 이러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완벽한 해답을 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저희에게는 부적절한 콘텐츠를 발견했거나 구글의 정책을 위반했다고 신고해주는 수백만의 사용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신고가 접수되면 저희는 해당 내용을 보고 적절성을 검토한 후에 제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판단은 주관적일 수 있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어떤 이들에게는 용인될 수 있는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경우에 말입니다.

저희는 또한 콘텐츠를 규제하는 법률이 나라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복잡한 상황도 직면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표현의 자유에 대해 나라마다 그 관용도가 각기 다릅니다. 이러한 법적 차이는 실제로 기술적인 도전과제가 됩니다. 즉, 특정 콘텐츠가 어떤 국가에서는 나오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나오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극단적인 경우, 저희는 특정국가의 법률과 민주적 절차의 부재가 저희의 원칙에 너무 벗어나, 해당국가의 법을 준수하면서는 사용자 혜택을 주는 사업을 도저히 영위할 수 없는 문제상황에 이르기도 합니다.

저희는 법적인 사항만을 고려해 정책을 고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합법적인 콘텐츠라 하더라도 모든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희는 사용자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로벌 제품정책을 개발하고 시행할 때는 현지의 문화와 니즈를 항상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지 사정은 나라에 따라 매우 다양합니다.

논란이 되는 콘텐츠를 다루는 일은 기업으로서 저희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입니다. 또한 감히 모든 사안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거나 모든 정답을 가지고 있다고 호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우선시되는 원칙들을 바탕으로 문제를 검토하고 모든 사안을 최대한 투명하게 결정하며, 정책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토론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다른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신호인 것입니다.

작성자: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 레이첼 웨트스톤(Rachel Whetstone)



#1. 서양 사회의 저력이란 바로 윗글에 있는 것이다. 딴게 부러운게 아니다.
2009/04/09 11:23 2009/04/0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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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인만해도 애플 제품 중 아이팟 4세대, 나노 1세대, 아이팟 터치1세대, 맥북 에어를 직접 구매한 이력이 있으니 자비로 산 컴퓨터/가전 단일 브랜드로는 애플에 퍼준 돈이 상당하다.

#2. 잡스의 성공 신화를 그렇게 믿는 편은 아니지만, 단일 타켓의 브랜드화, 아이콘화의 능력으로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장 폐쇄적인 플랫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오픈된 어플 마켓을 연 것을 보면 그의 사업 수완은 정말이지....
2009/03/25 22:23 2009/03/2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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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안생겨요

여러분들 안생겨요
내 주위에 하나둘씩 생기니
언젠간 나도 애인이 생기겠지
막연히 생각하시죠
생각할 필요 없어요
안생겨요
발렌타인데이 전날
좀 기대하셨죠
뭐 얻으셨나요?
안생겼죠?
화이트데이때도 기대하셨죠?
어땠나요?
기대할 필요 없었죠?
안생겨요
거울을 한번 보세요
뭐 이 정도면 괜찮지
그런 생각 해보셨죠?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도 안생겨요
엇 저 사람 날 보는 눈빛과 행동이 이상해 혹시?
착각해 보셨죠?
하지마요..
착각해도 안생겨요
어릴 땐 성인이 되면,
대학교에 가면 생길 거 같았죠?
어때요..?
안생겼죠?
결국은 그래도 짝을 찾고 결혼할거 같죠?
그래요..
결국 생겨요.. 걱정말아요..
근데, 안생길 사람은 안생기더라구요..
이 모든게 여러분들 이야기는 아닐 거 같죠?
아닐 거 같아도..
안생겨요.
2008/12/10 02:50 2008/12/10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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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 Touch

from etc 2008/11/04 16:38

이번에 소개시켜 드릴 것은 아이폰/아이팟 터치 어플 룩스 터치라는 무료 어플입니다.
게임의 모티브는 보드 게임 risk라는 데서 얻은 듯 합니다.
아래의 그림을 보시면 알겠지만 구성이 거의 비슷하고, 위키(http://en.wikipedia.org/wiki/Risk_(game) )에 들어가보니 그 게임입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맨윗 그림에 나오는것처럼 게임 원리는 군사를 이미 나뉘어진 구역에 배치하여 땅따먹기를 하는 게임입니다. 기본으로 3개의 군사가 주어지고 적절히 지역 안배를 하여 군사를 배치한 다음에 세계 정복을 하는 뭐 그런 게임입니다. 얼핏 보면 그냥 숫자만 나와 지루할 것 같은데...실상 몇번 하다보면 중독성과 집착성이 굉장히 큰 게임입니다.

자 그럼 일단 터치 유저는 다운을 받으시고...
몇몇 팁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Tip.
1. 게임에서는 각 대륙을 모두 본인이 지배를 했을때에 대륙별로 턴당 3개씩 주어진 군사의 수가 플러스가 됩니다. 이때, 가장 수성하기 쉬운 지역은 오세아니아 대륙입니다. 타 대륙과의 접점이 1군데이기때문에 일단 수성을 하면 기본적으로 보너스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지배하는 땅이 4구역 밖에 안되므로 지속적인 보너스 군사 획득이 쉬운 장점이 있죠.

2. 가능한한 다른 플레이어가 많이 밀집한 지역에 군사를 배치하지 마십시요.

3. 구역을 지배하는 구역의 수가 1개가 되어 거의 망해가는 종족의 땅을 내가 점령햇을 때 cash가 뜨고 이는 곧 무지막지한 수의 군사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즉, 1개만 남은 망해가는 종족의 땅을 점령하라는 말이죠. 그러면 기본 3 + 대륙 보너스 이외의 많은 수의 군사를 한 턴에 얻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 지구 정복하기는 힘들지만 몇번 해보면 패턴이 있어서 쉽게 정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은,,
버그

1. 맨 윗 그림처럼 한 지역에 배치할 수 있는 군사의 맥시멈은 9999입니다. 더 이상 늘어나지 않습니다.
2. 토탈 군사의 수도 9999로 잘 못 표시가 됩니다.
3. 가끔 메모리를 많이 잡아 먹는지 홈버튼 누르고 어플 종료를 하려하면 로딩이 좀 느린면이 있습니다.
4. 가끔 메인 진입이 안됩니다.

모 이런 버그가 좀 있네요.

암튼.
2008/11/04 16:38 2008/11/0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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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의 역사

from etc 2008/10/18 02:53
오역의 역사..

재밌네요...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98&aid=0001968360&


오 역은 때로는 '헛소문'(groundless report)이나 '괴담'(ghost story), '유언비어'(romor)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보도 자체를 'exaggerated report'(과장보도), 'unfair report'(불공정보도), 'incorrect report'(부정확 보도), 'unbelievable report'(믿을 수 없는 보도)뿐 아니라, 'fraudulent report'(사기보도), fabricated report(날조보도, cooked-up report, invented story)로 까지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오역 은 인류사 최대의 비극인 핵폭탄투하까지 불러왔다. 물론 "미국의 일본에 대한 원폭투하가 계획적인 것이었지 단순히 일본 언론의 오역보도 때문이었겠느냐"에 대해서는 지금도 견해가 엇갈리지만 일단 인과관계의 시간적 순서로 보면 오역이 핵폭탄 투하를 부른 게 틀림없어 보인다.

1945년 7월 26일 미·영·중 연합국 수뇌들(소련은 8월 들어 참석)은 포츠담선언(Potsdam Declaration)을 통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낸다.

당 시 연합국 지도자들은 일본에 '무조건 항복'과 '완전한 파멸' 중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일본 천황은 그 요구를 수락하기 위해 내각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 협상(協商)을 통한 강화(講和)를 원하던 천황 히로히토(裕仁,1901.4.29∼1989.1.7)는 소련을 통해 그 '무조건' 항복이란 말의 삭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에 의해 거절됐다. 그러자 일본은 좀 더 시간을 끌면서 외교적인 노력으로 협상의 여지를 얻기 위해 "무조건 항복요구에 대한 답변을 당분간 보류한다"는 성명서를 스즈키 칸타로(鈴木貫太郞)총리 명의로 발표하도록 한다. 그러나 스즈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모쿠사츠(????, mokusatsu)'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당시 일본의 '도메이통신'(同盟通信)은 영문기사에서 '묵살한다'(ignore) · '언급(논평)을 삼간다'(no comment)는 두 가지 뜻을 지닌 일본어 '모쿠사츠(默殺)'를 '묵살한다'(ignore)쪽으로 잘못 영역해 보도했다. '라디오 도쿄'의 영어방송도 '무시한다'로 보도했다. 7월30일 뉴욕타임스는 "일본이 최후통첩을 무시하여 미 함대가 공격에 나선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 날짜 미국 각 신문 표제어는 '일본, 공식적으로 연합국의 최후통첩 거부'라고 되어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사흘 뒤 원폭투하를 지시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미국은 무조건 항복요구를 묵살한다는 답변에 격분했고 결국 8월 6일 히로시마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오역은 이처럼 국가존망과 생사를 가르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당시 스즈키 총리가 의도한 것도 후자였다고 한다. 이 같은 오역이 없었더라면 세계사를 바꾼 원폭투하도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오역은 성경도 예외는 아니다.

"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It is easier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a rich man to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는 성경 구절(마가복음 10장25절, 마태복음 19장24절)도 오역에서 비롯됐다는 얘기가 있다. 당시 예수가 사용하던 아람어(Aramaic language, 그리스어와 혼합된 시리아 방언) 원어는 '밧줄'(gamta)이었는데 번역자가 이를 '낙타'(gamla)로 혼동해 옮기는 바람에 '밧줄'이 '낙타'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하기야 이 경우, 원문보다 더 멋진 문장이 되었지만 말이다.

누가복음 5장 24절을 보면 예수께서 배데스다 호숫가에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Get up, take your mat and go home)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말은 오역된 것으로 짐작되며 그렇다면 "일어나 네 지팡이를 가지고 집으로 가라"가 옳은 번역이다. 히브리어에서 '지팡이'를 뜻하는 'matte' 가 '침상'이라는 뜻의 'mitta'와 혼동됐다는 것이다.

신학자들의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아버지 요셉의 직업은 목수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92년에 '예수의 전기'(Jesus: A Life)를 쓴 A. N. Willson에 따르면 목수를 뜻하는 그리스어 '테크톤'(techton)은 아람어인 '나가르'(naggar)를 번역한 것이다. 나가르는 '교양인'이나 '장인'을 뜻하는 말이다. 예수의 어머니가 처녀가 아니라는 도발적인 주장도 있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 의하면 예수의 어머니가 처녀라는 것은 오역이 낳은 터무니없는 전설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이사야(Isaiah)서에서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헤브루어 'almah'를 처녀를 뜻하는 그리스어 'parthenos'로 잘못 번역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데렐라가 유리 구두를 신었다는 것도 오역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있다.

주 지하다시피 신데렐라는 궁중 무도회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리 구두' 한 짝을 잃어버리게 된다. 왕자가 줍게되는 이 구두는 그후 못된 신데렐라의 언니들이 억지로 신어보려 하지만 맞지가 않고 신데렐라의 조그만 발에만 딱 맞는다. 그렇게 해서 왕자와 신데렐라는 온갖 장애를 넘어 마침내 서로를 다시 찾아내게 된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유리구두는 번역상의 실수였다는 것이다. 월트디즈니의 만화영화가 따르고 있는 앵글로 색슨계의 버전에서 만큼은 유리구두로 되어 있으나 독일의 형제작가인 그림형제의 동화에서는 황금구두가 등장한다. 이 동화의 최초 프랑스어판에서 신데렐라는 '털가죽'(vair)으로 된 슬리퍼를 신고 있었을 뿐인데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잘못 이해하여 '유리'(verre)로 둔갑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와 터키의 분쟁으로 유명한 지중해 동부 도서국 키프로스에서는 수십년전까지도 사람들이 만나면 '굿바이'라고 인사했다. 굿모닝 또는 굿이브닝 등으로 해야 할 걸 거꾸로 한 것이다. 문제는 이 나라의 그리스어-영어(希英)사전이었다. 사전 편찬자가 굿바이를 '만날 때의 인사'라고 오역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특히 외국인들과의 모임이나 상거래, 협상에서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한 국내에서 입전된 외신의 오역도 많은 해프닝을 남겼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를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소련 공산당 제1서기 흐루시초프(Nikita Sergeevich Khrushchyov, 1894.4.17∼1971.9.11)는 기고만장해서 익살을 떨었다. "(스푸트니크가 지구를 벗어났으므로) 이제 지구가 전보다 더 가벼워졌다(Now, the earth became lighter than before)" 국내의 한 통신사는 외국 통신사로부터 들어온 이 기사를 번역해 각 신문사와 방송사에 송고했다. "별(인공위성)이 떴으므로 이제 지구는 전보다 더 밝아졌다". 이 경우 'light'는 '빛이 밝다'가 아니라 '가볍다'는 뜻인데 번역상의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오역으로 인해 유명 가수가 '괴물'로 둔갑되는 경우도 생겼다.

우 리에게는 Delilah, Green Green Grass of Home 등의 노래로 잘 알려진 영국 가수 톰 존스(Tom Jones)는 일찍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수많은 팬들은 그가 호모(homo)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때마침 존스와의 방송대담 프로그램이 마련됐고 여기서 그는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를 밝히라는 질문을 받게된다. 이에 존스는 'I'm bisexual.'이라고 대답했고 이 내용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됐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한 통신사에서 '양성애자'라는 뜻의 bisexual을 '두개의 성기를 가진 사람'으로 번역해 모든 언론사에 송고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 도하 신문 '해외토픽'난에는 시커먼 제목으로 이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보도됐다. 존스의 노래에 열광해온 많은 젊은 팬들은 "언론이 멀쩡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었다"에서부터 "성기를 상대에 따라 남성, 여성 양쪽으로 사용할 수 있어 참 좋겠다"며 부러워하기 까지 했다.

이 bisexual 소동은 해당 통신사의 정정보도로 일단락됐지만 지금도 은퇴한 언론사 국제뉴스담당 기자들 사이에는 잊지못할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영 어를 잘 못 알아듣는 바람에 총을 맞아 죽은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freeze'의 뜻을 '얼다'라고만 알았지, 이 단어에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게 하다'라는 뜻이 담겨있는지를 몰랐던 한 일본 유학생이 이를 'please'로 잘못 알아듣고 '총 맞아 죽은 사건이다.

『미국에 유학중인 일본 학생 - 그는 어느 날 늦잠을 자다가 학교에 지각을 하게 됐다. 대충 옷을 주어입고 집을 나와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워낙 급한 마음에 그만 남의 집을 가로질러 가게 되었다. 미국의 울타리(담장)는 낮은 경우가 많아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주거침입이었다. 이것을 본 미국인 주인은 다음과 같이 외쳤다.

미국인: freeze!(꼼짝마)

일본인 유학생: 'freeze!'에 '꼼짝마'라는 뜻이 있는 줄도 모르고 바쁜데 웬 'please' 나며 눈길 한번 주고는 길을 재촉했다.

미국인(반복해서): freeze! freeze!

그리고 '탕!'하는 총소리와 함께 일본인 유학생이 쓰러졌다.

나 중 미국법정에서 밝혀진 이야기지만 이 사건 참고인으로 출석한 대부분의 일본 유학생들은 'freeze'와 'please'의 발음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으며, 'freeze!'에 '꼼짝마'라는 뜻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 리나라 사람들은 거의가 영어의 boy friend와 girl friend의 의미를 그냥 '남자친구', '여자친구' 쯤으로 알고 있는데 외국에서는 아주 조심해야 할 단어이다. boy friend와 girl friend는 단순한 이성간의 친구가 아니라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는 사이를 의미한다. 통상 구분없이 'friend'라고 하면 되지만 굳이 '남자친구', '여자친구'라고 말하고 싶으면 'male friend', 'femail friend'로 하면 된다. 'make love'라는 영어도 단순히 '사랑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성행위를 하다'라는 의미이다. 한번은 미국의 한 간이주점에서 미국 석사학위까지 받은 한 한국인 교수가 맥주를 배달하는 젊은 여종업원에게 "You are very beautiful, let's make love" 라는 말을 건넸다가 뒤늦게 얼굴을 붉히며 용서를 빈 일까지 있었다. 이 교수는 'make love'의 뜻을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우 리말을 영역할 때도 마찬가지로 신중을 요한다. 예컨대 "아직 처녀입니까?"라는 한국어 문장을 'virgin'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Are you still a virgin?"이라고 영역하면 "Are you still single?"이라는 의미 대신에 'a person who has not had sex'라는 이상한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옳은 표현은 "Are you married or single?"이 될 것이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많은 올드 팝송도 제목에서 부터 가사에 이르기까지 오역 투성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① 국내에서는 1960-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겨 부르는 노래 '자니 하튼'(Johnny Horton)의 'All for the love of a girl'은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의 노래)'이라는 로맨틱한 내용으로 번역, 소개되고 있으나 사실은 떠나버린 여인 때문에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 남자가 읊는 탄식조의 노래이다. 그런데도 이 노래는 우습게도 약혼식, 결혼식 축가로 널리 불러져 왔다. 잘못 번역된 제목 때문이다.

이곡은 가사 첫머리에 약혼식이나 결혼식 언어로는 어울리지 않는 Well today, I'm so weary(오늘 난 몹시 지쳐있어요) Today, I'm so blue(오늘 난 매우 우울해요)로 시작되어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Sad and broken hearted And it's all because of you(너무 슬프고 찢어질듯이 마음이 아파요 이 모든 것은 바로 당신 때문이지요) Life was so sweet dear Life was a song(인생은 너무 달콤했어요 그리고 그 인생은 마치 노래와 같았지요) Now youv'e gone and left me Oh where do I belong And it's all for the love of a dear little girl(이제 당신은 날 혼자 두고 떠나 버렸으니 난 어디로 가야하나요 이 모든 것은 작은 소녀에게 바친 사랑 때문이었지요).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남자는 소녀에게 자신의 일생과 이 세상의 기쁨을 다 바치는 남자(I'm a man who gives his life and the joy of this world)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러한 사랑이 멀리 떠나버린 소녀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역부족(?)이었다는 분위기가 은근히 배어난다.

이 번역이 이렇게 된 것은 'for' 때문이다. 즉, for를 '∼위한, 위하여'가 아니라 '∼때문에'로 번역해야 하는 것이다.

②1970 년대 중반 Albert Hammond의 히트곡 'For the peace of all mankind'는 오랫동안 '인류 평화를 위하여' 로 번역돼 왔다. 그리고 광복절에 방송에서 많이 들려주었던 노래였다. 그러나 이 곡은 한 여인을 잊지 못하는 남자의 애환을 그린 곡이다. 떠나간 뒤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여인에 대해 Will you go away? will you go away?, for the peace of all mankind라고 노래한다. 이것은 '명령문+for one's sake'의 용법에 따라 'for the∼'는 '제발' 이라는 사정을 의미하는 부사로 번역되어야 한다. for all mankind's sake에서 sake 대신 peace가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전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떠나 줄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제발 부탁하건데 떠나가 줄래?"라는 의미이다.

③90년대부터 인기를 끈 록 가수 '익스트림'(Extreme)의 노래 'rest in peace'는 '고이 잠드소서' 의 뜻으로 보통 '명복을 빌다'는 뜻 인데 종종 '평화 속의 휴식'으로 잘못 번역돼 왔다. 이 때문에 팝송으로 영어 공부를 하던 학생들이 종종 낭패를 당하기 일 수였다. 서양 국가에 가면 묘비에 R.I.P.(rest in peace)라고 적혀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문학작폼의 번역에서 오역사례는 심각할 정도라고 한다.

밀 리언 셀러인 댄 브라운(Dan Brown)의 추리소설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의 한국어판이 오역 시비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Harry Potter series)도 선풍적인 인기속에 애독되고 있지만 상당부분 오역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컨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더즐리'(Dursley)가 매는 'his most boring tie'는 '아주 희한한 넥타이'라고 번역되었는데 이는 오역이고 '최고로 따분하게 생긴(싫증나는) 넥타이'로 번역돼야 한다. 그런가 하면 'squeaky'는 '끽끽거리는, 삑삑거리는'의 뜻이지만 '아주 맑은'이라고 옮겨졌다. 그래서 번역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잘못된 번역이 독자의 머리에 박히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고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는 번역자의 불성실이나 무지, 또는 그 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잘못된 번역이 그치지 않는다. 1994-1995년 미국에서 인기절찬리에 방영된 TV 코미디 시리즈물 'Moving story'(감동적인 이야기)가 '움직이는 이야기'로 번역돼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로 1998년 영화화된 'Great Expectations'(막대한 유산)는 '위대한 유산'으로 오역돼 아직도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중 'Maximum the second'는 일본어판의 오역을 답습해 '최대 일초'로 번역되고 있지만 실은 우승마의 이름인 '맥시멈 2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Roygbiv, Vance taught us'는 '로이그비브, 밴스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로 번역됐다. 하지만 'Roygbiv'가 사람이름이 아니라 무지개 일곱 색깔의 첫글자(red-orange-yellow-green-blue-indigo-violet)를 모아 만든 조어라는 사실을 알면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지를 바로 알게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밴스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빨주노초파남보'로 옮기는 게 정확하다.

1960 년 서울의 모 출판사가 번역 출간한 버트런트 러셀(Bertrand Authur William Russell)의 '서양의 지혜'(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에 의하면 이 책 머리말에 나오는 "A great book is a great evil"을 "위대한 저서는 죄악이다"라고 번역하고 있는 데 그야말로 정말 웃기는 번역이다. 이는 "두꺼운 책은 읽기 버겁다", "책이 두꺼우면 독자에게 고통을 준다"라는 뜻이다.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 문장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로 번역돼 쓴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원문은 번역하면 "나는 알았지. 무덤 근처에서 머물 만큼 머물면 이런 일(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이다. 'around'라는 부사 다음에 'the tomb'이라는 명사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속담 "Our last garment is made without pockets"의 뜻은 "우리들의 마지막 의상은 주머니 없이 만들어 진다"가 아니라 "수의(壽衣)는 호주머니가 없다"라는 의미다.

미 술의 세계를 깊이 있게 다루는 일본 만화 '갤러리 페이크'(????????, Gallery Fake)에도 대표적인 오역이 나온다. 'Tax Heaven', 즉 '조세 피난처' 또는 '조세회피지역'을 문자 그대로 직역하여 '세금 천국' 이라고 오역하고 있다. 빅 매치(big match)를 '커다란 성냥', 와일드 빌(Wild Bill)을 '야생 영수증', 하트 어택(heart attack)을 '심장공격'으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될까? 신문 기사에서도 gunship을 '포함'(砲艦), warship을 '전함'(戰艦)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각각 '공격용 헬기', '군함'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이문열의 소설 '시인'을 영역한 책 'Poet'에는 "발 없는 말(言)이 천리 간다"란 속담을 "A horse with no legs goes a thousand leagues"로 완전히 오역돼 있다.

△기타 문학작품 제목의 오역사례

제목이 잘못 번역됐기 때문에 내용을 읽고도 헷갈리며, 작품이 지향하는 정확한 의도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대표적인 제목 오역 사례를 소개한다

①미국 소설가 커트 보니거트(Kurt Vonnegut, Jr)의 소설 'Cat's Cradle'은 '고양이의 요람'이 아니라 '실뜨기 놀이'이다.

②헤밍웨이의 단편 'The Killers'도 '살인자'로 번역되고 있지만 '살인청부업자'가 정확하다.

③D.H.로런스의 소설 'Lady Chatterley's Lover'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아니라 '레이디 채털리의 애인'이 맞다. Lady는 부인에 대한 경칭이며, lover는 '애인'이다.

④E.M. 포스터의 'A passage to India'는 '인도로 가는 길' 이 아니라 '인도로 가는 항해'로 바로잡아야 한다.

▲영화는 개봉전 시사회에서 그 내용을 보면 대부분 내용을 알 수 있는 것들이지만 제목에 적지 않은 오역이 발견되고 있다.

①1993 년에 제작된 제임스 아이보리(James Ivory)감독의 영미합작 영화 'Remains of the day'는 '그날의 흔적들' 또는 '그날의 기억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겠지만 국내 번역은 '남아 있는 나날들'로 완전 오역돼 있다. 다음은 이 영화의 줄거리인데 이를 보면 '그날의 흔적들'인지 '남아있는 나날들'인지 쉽게 분간할 수 있을 것이다.

『1958년, 스티븐스(Stevens: 안소니 홉킨스 분)는 영국 시골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그는 1930년대 국제회의 장소로 유명했던 달링턴 홀(Darlington Hall), 그리고 주인 달링턴 경(Lord Darlington: 제임스 폭스 분)을 위해 일해 왔던 지난날을 회고해본다. 당시 유럽은 나치즘의 태동과 함께 전운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스티븐스는 달링턴에게 충성을 다하지만, 독일과의 화합을 추진하던 달링턴은 친 나치주의자로 몰려 종전 후 폐인이 되고 만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맹목적인 충직스러움과 직업의식 때문에 사생활의 많은 부분이 희생되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했고, 매력적인 켄튼(Miss Kenton: 엠마 톰슨 분)의 사랑을 일부러 무시했고 몇년 동안 켄튼과의 관계는 경직되어왔다. 내면에서 불타오르는 애모의 정을 감춘채 스티븐스는 오로지 임무에만 충실해온 것이다. 결국 그의 태도에 실망한 켄튼은 그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야 만다. 지금 스티븐스는 결혼에 실패한 켄튼에게로 향하고 있다. 그녀를 설득시켜 지난날 감정을 바로잡아 잃어버린 젊은 날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그러나 이러한 희망마저 무산되고 그는 새주인에 의해 다시 옛모습을 되찾게 된 달링턴주로 혼자 외로이 돌아온다. 지난날의 온갖 영욕을 이겨내고 꿋꿋이 살아남은 달링턴주는 어쩌면 자신과 조국 영국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①영화 '007 Dr. NO'는 후에 제목이 '살인번호'로 수정됐지만, 국내 개봉 당시 '007 의사는 필요없다'로 오역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계 악당 노박사를 무찌르는 내용이라서 Dr. NO 였는데도 말이다.

② 영화 'Jaws'의 국내 제목은 처음 '아가리'였다. Jaws(입)는 상어가 벌리는 공격적이고 거대한 입을 함축해놓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번역과정에서 'Jaws'를 곧이 곧대로 해석해 '아가리'로 옮겨놓은 실수를 범했고, 개봉이 되고나서야 오역임을 파악하고 '죠스'로 수정했다.

③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North By Northwest'의 국내 번역 제목도 가관이다. 여기서 Northwest는 미 항공사 '노스웨스트'를 의미하는데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로 번역 소개됐다. 따라서 '노스웨스트 항공기를 타고 북쪽으로'라는 의미가 들어가야 한다.

④ 프랑스 영화 'Le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의 국내 제목은 '아멜리에'. 원제는 '아멜리에 풀랭의 환상적인 운명' 쯤으로 의역할 수 있지만 국내에선 미국식 제목 'Amelie From Montmartre'(몽마르뜨의 아멜리)를 빌려와 그냥 '아멜리에'라고 번역했다. 반드시 오역이라고 할 수 없지만 원제의 느낌을 제대로 무시해 버렸다.

아멜리에의 여주인공 오드리 토투(Audrey Tautou)가 주연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혀 다른 영화가 '아멜리에2'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개봉되기도 했다. 원제는 로랑 피로드 감독의 프랑스 영화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Le Battement Dailes Du Papillon, The Beating of the Butterfly's Wings) 이지만 웃기는 것은 이 영화는 아멜리에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⑤ 'Lost in translation'의 국내 제목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번역됐다. 그러나 여기서 'translation'은 '통역'이 아니라 '황홀'이란 의미이다. 번역을 하자면 '황홀경', '황홀경에 빠지다''쯤이 된다. 하지만 오역 된 제목이 영화 내용과 그럴싸하게 연결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⑥1994 년 짐 해리슨(Jim Harrison)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에드워드 즈윅(Edward Zwick) 감독의 'Legends Of The Fall'은 '가을의 전설'로 국내에 소개돼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영화 초반에 낙엽이 떨어지는 장면이 나오지만 정작 '가을'과는 전혀 무관하다. 'The Fall' 은 아담과 이브의 타락에서 비롯된 인간의 타락을 뜻한다. 따라서 '가을의 전설'은 '타락의 전설', '몰락의 전설'로 번역돼야 한다. 브래트 피트(Brad Pitt), 앤서니 홉킨스(Anthony Hopkins), 에이던 퀸(Aidan Quinn), 줄리아 오몬드(Julia Ormond) 등이 출연하고 있으며, 상영시간은 133분이다. 이 영화는 몬태나주의 목장을 무대로 광활한 대지위에 펼쳐지는 한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아름다운 영상에 담아 흥행에 성공했으나, 주인공 브래트 피트의 매력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드라마의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다.

⑦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는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이 울리나'가 정확한 번역이다. 소설 제목은 17세기 영국 시인 존 단(John Donne)의 '명상 17'(Meditation 17)에서 따온 것으로, 'rings'가 아니라 'tolls'인 것에 주의해야 한다. 'toll'은 사람이 죽어 '조종을 친다'는 뜻이다.

⑧'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 'A passage to India'(인도로 가는 항해)로 유명한 영국의 대문호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Edward Morgan Forster)의 대표작 'Howards End'는 후에 '하워즈 엔드'라 수정했지만 초기엔 '하워즈가(家)의 종말'로 오역, 소개됐다. 영화의 원작 제목 'Howards End'는 주인공 집안의 시골집 이름으로 고유명사다.

⑨'돌아오지 않는 강'으로 번역된 마릴린 먼로 주연의 'River of No Return'은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강이 아니라 너무 위험해 사람이 건너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뜻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이 정확한 번역이다.

⑨'Children of a Lesser God'은 '작은 신의 아이들'로 국내에 번역 소개됐으나 여기서 'Lesser'은 단순히 '작다'는 의미가 아닌 가치의 결함을 말한다. 즉 '작은 신의 아이들'이 아닌 '하위 신(下位神)의 아이들' 쯤으로 번역했어야 옳다.

⑩1989년에 제작된 피터 위어(Peter Weir)감독의 아카데미상 영화(Academy Award-winning film) 'Dead Poets Society'의 국내 영화제목 '죽은 시인의 사회'를 놓고 오역이냐 아니냐로 참 시끌시끌했다. 어쨌든 영화의 내용과 비교해보자면 'Dead Poets Society'의 'Society'는 '사회'의 의미보다 '클럽', '동아리' '협회'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즉 번역하자면 '죽은 시인의 클럽'이 더욱 적절한 것. 하지만 국내엔 '죽은 시인의 사회'란 전혀 다른 의미의 제목으로 소개 되었다.

⑪'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의사 지바고'(Dr. Zhivago), '미션'(The Mission)등의 영화각본으로 유명한 영국 극작가 로버트 볼트(Robert Oxton Bolt)의 희곡 'A Man for All Seasons'는 '팔방미인' 또는 '사계절의 사나이'가 아니라 '원리원칙의 사나이' 혹은 '지조있는 사나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팔방미인의 뜻은 'Jack of all trades'이다. 르네상스기의 위대한 인도주의자 토머스 모어의 생애를 그린 그의 이 각본은 영화화되어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⑫'Ryan's Daughter'는 '라이언의 처녀'가 아니라 '라이언의 딸'로 바로 잡아야 한다.

▲이밖에 일상생활이나 문학작품, 영화 등에서 오역되고 있거나 잘못 사용되고 있는 영어 표현들을 모아본다

*The Scarlet Letter(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 → 주홍글자

*The Sound and the Fury 음향과 분노 → 헛소리와 분노(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sound눈 떠들어 대는 소리)

*Moveable Feast 이동축제일 → 마음의 축제

*On the revolution of Celestial Orbit 천체의 혁명에 관하여 → 천체의 회전(공전·자전)에 관하여

*Le mystere de la Passion 정념의 신비→ 그리스도 수난의 기적극

*The Ballad of Reading Gaol 독서하는 감옥의 노래 → 레딩감옥의 노래

*Remembrance of Things past 지나간 일들에 대한 기억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Waltzing Matilda 춤추는 마틸다 → 배낭 유랑

호주 민요 'Waltzing Matilda'는 '춤추는 마틸다'가 아닌 '배낭 유랑' 또눈 '월칭 마틸다'가 맞다. 'waltzing'은 'walking'의 방언이며 'matilda'는 '보따리'를 뜻한다.

*Green-sleeves 푸른 옷소매 → 그린슬리브즈

영국민요 Green-sleeves는 부정을 저지른 여성의 이름임

*Lost Generation 잃어버린 세대 → 길 잃은 세대, 방황하는 세대
2008/10/18 02:53 2008/10/18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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